“韓 제도경쟁력, 美‧獨 2만불 시절보다 취약” ... ‘장기어젠다 속도전’
- 여야정‧산관학, 대한상의 모였다 ... 박용만 회장 “국가미래 책임질 어젠다 흔들려선 안돼”
- 김무성∙문재인∙심상정 대표, 유일호 부총리, 최원식 맥킨지 대표, 상의 회장단 등 자리
- 美英 선진국에 이어 中도 바꾸는데 ... “행정규제기본법 조속 통과해 포지티브규제 없어야”
- “주5일中 절반이상 야근” 낡은 관행 벗자(맥킨지) ... “서비스=일자리, 업그레이드해야”
“지난 30여년간 경제성장률을 펼쳐놓으면 10년마다 1~3%포인트씩 떨어지고 있습니다”, “출산율은 OECD 34개국중 최하위입니다”, “부정부패근절, 관료행정비용, 재산권 보호 등 제도경쟁력은 미국, 독일의 2만7천달러시기(한국 1인당 GDP)보다 취약합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장기 어젠다(agenda: 의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대한상의가 26일 상의회관에서 개최한 ‘중장기 경제어젠다 추진 전략회의’에서 여야정(與野政)․산학연(産學硏) 대표 70여명은 “지금의 경제체질로는 선진경제의 도약의 길에 오르기 어렵다”며 “국가의 내일을 책임질 어젠다들은 어떠한 정치나 사회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추진돼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경제체질 개선을 위한 구조개혁이 성공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고 문재인 더민주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역시 장기어젠다 추진을 위해 경제계와 소통하고 변화를 유도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무조건 대기”, “평가시즌, 보여주는 야근” ... 상의 회장단 “낡은 관행부터 벗자”
먼저 상의 회장단들은 ‘구시대적 낡은 관행을 과감히 벗어버리자’는데 뜻을 모았다. 반기업정서가 상당부분 후진적 업무프로세스와 구시대적 기업문화 때문이라 봤기 때문이다.
‘야근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한상의가 맥킨지와 공동으로 100개기업 4만명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해 이날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직장인들은 ‘주5일중 이틀 넘게(2.3일) 야근’하고 있었고 한국의 기업문화수준은 글로벌 하위 25%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야근 이유에 대해서는 ‘회의 끝날 때까지 무조건 대기하래요’, ‘일 많은 사람한테만 일이 몰려요’, ‘야근 많이하는 사람이 성실한 직원으로 보이나봐요. 보이는 야근해야죠’, ‘어차피 야근할 거니까 ...’ 등이었다.
참석자들은 이같은 야근문화의 원인에 대해 의식이 없는 상사, 비효율적 업무관행, 야근은 미덕이라 생각하는 문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야근뿐 아니라 보고문화, 소통문화, 여성근로 등에도 아직도 후진적 문화가 많이 잔재한다고도 했다. ‘상사에게 와이(why: 왜)를 묻지 못하고 의중을 추측하느라 밤샘회의를 한 기업’, ‘일할 사람 없다면서 지게차 운전에 여자는 안된다고 말하는 유리벽’ 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최원식 맥킨지 대표는 개선방안에 대해 “피상적, 단편적 처방이 아닌 가슴에 와 닿는 공감대 형성과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CEO 대상 관심유도와 구체적 실천방안 제시를 통해 기업의 실질적 변화를 유도해 나갈 계획”이라 밝혔다.
“하루 수만개 아이디어 쏟아져 중국도 바꿨는데 ...” 포지티브 규제 틀 바꾸자
선진 기업환경 조성에 관한 이야기도 오갔는데, 대부분 규제의 근본 틀부터 바꿔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일단 안돼’식의 사전규제, ‘이것이것만 하세요’식의 포지티브규제 등을 선진형 규제로 바꾸자는 얘기다.
김태윤 한양대 교수(규제개혁위원회 간사)는 “사전규제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실효성이 점차 낮아져, 자칫 反창의적 분위기마저 고착될 수 있다”며 민간이 자기책임하에 운영하는 자율규제나 사후규제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만 회장도 “미국, 영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정해진 것 빼고 다 할 수 있게’ 규제의 근본 틀을 바꾼 덕분에 오늘도 수만가지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모이고 사업화된다”며 “하지만 ‘정해준 것 말고는 할 수 없는’ 우리의 규제 틀에서는 어떠한 혁명적 아이디어가 수용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무섭게 치고오고 있지만 포지티브 규제로 사업화범위는 우리가 훨씬 좁다는 얘기다.
실제로 사물인터넷사업의 경우, 통신망과 규격, 기술 등에 노하우를 지니고 있는 기간통신 사업자는 사물인터넷용 무선센서 등 통신장비 개발이 사전적으로 막혀있다. 과거 PCS시절 통신사의 독점권을 막기 위해 ‘서비스 따로, 기기 따로’ 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애플, 구글 등은 양쪽을 병행하면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포지티브 규제로 신사업에 빛을 못보는 경우는 이뿐만 아니다. 의료용 식품을 하나하나 열거해 치매환자용식품 등의 개발이 저해되고 있고, 신재생에너지를 8종만 인정해 하수․하천수 온도차에너지 등의 에너지는 개발이 막혀있다.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K-뷰티 역시 포지티브로 경쟁력을 잃고 있다. 우리는 기능성 화장품을 주름개선, 미백, 자외선 차단 등 3종류로 한정해 비타민C 함유, 피부재생 등의 화장품은 경쟁국 미국, 유럽에 비해 제품개발이 제한돼 있다. 김태윤 교수는 “선진국들이 서비스와 제품을 포괄적으로 정의하는 것만으로도 관련산업이 우리나라보다 몇 년씩 앞서가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제 부산상의 회장은 “재작년만 해도 사전규제의 사후규제화, 포지티브규제의 네거티브화 등을 담은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되는 등 호기롭게 출발했으나 지금은 국회에 묻혀있다”며 “여야간 이해상충이 크지 않은 만큼 19대 국회가 의지를 갖고 조속히 통과시켜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비스 고용비중 2.5%p만 높여도 64만개 일자리 창출”
‘서비스 발전=일자리 창출’이라는 공식에도 의견의 일치를 봤다. 김현수 국민대 교수는 “한국의 서비스산업은 GDP의 60% 수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 2만5천달러 진입 시점이었던 프랑스의 95년(72.7%), 영국의 98년(71.1%)과 비교해도 턱없이 낮다”며 규제개선, 신사업 발굴을 통해 서비스산업의 고용비중을 OECD 평균(72.2%)까지만 높여도 64만개의 일자리가 가능해진다고 했다. 아울러“청년 10명중 8명이 서비스분야 일자리를 원하고 있어 ‘실업난 속 인력난’을 겪고 있는 사회문제도 없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기존 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 ‘서비스는 무료라는 인식’, ‘규제장벽’ 등은 서비스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
이를테면, 지금은 금지되고 있는 원격진료가 허용되면 원격진료 전문가라는 직종이 생기는 동시에 유비쿼터스 헬스케어, 스마트 헬스케어의 디딤돌이 놓아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신용정보보호법에 막힌 사립탐정, 약사법에 막힌 보조약사 등 진입장벽만 허물면 새로 생기는 서비스직업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유망 서비스시장도 개척해야 한다고 지적됐다. 미국의 음악치료사, 영국의 동물보호보안관, 일본의 노인장기요양매니저를 벤치마킹하거나 당뇨상담사, 여행코디네이터 등 생활패턴 변화에 따른 직종을 개발하자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나이트클럽 관광명소 육성론도 나왔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한 나이트클럽은 세계 6위에 랭크돼 젊은 유커들이 하루에 8천만원을 쓰고 갈 정도”라며 “DJ, 바텐더 등 청년문화 트렌드에 적합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음에도 유흥업소로 분류돼 은행융자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권희석 하나투어 부회장은 “서비스산업은 시설이 아닌 사람중심이어서 고급인력 유치가 가장 중요하다”며 “서비스기업들이 과감한 투자와 고용에 나설 수 있도록 제조업에 비해 차별적인 금융세제 지원, 공공요금 감면 등을 지원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한상의는 6개월마다 중장기어젠다의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새로운 어젠다도 발굴할 계획이다. 이날 의제인 기업문화, 규제의 근본틀 개선, 서비스산업 선진화 외에도 ‘비시장적 입법현황 점검’, ‘공무원 행태 개선’, ‘기업지배구조 개선’, ‘통일’, ‘기후환경’등에 대해 중장기 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박용만 회장 ‘마일스톤 세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또 박용만 회장의 말처럼 대한상의가 끝까지 들여다보고 방향을 잡아주고 각계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 10년을 내다보고 마일스톤(Milestone: 몇 마일이 남았다는 이정표)을 세우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수개월내에 중장기경쟁력지수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공표하겠다는 것이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경제주체 모두가 자기성찰을 통해 환경변화에 끊임없이 반응해야 장기생존과 지속성장이 가능하다”며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의 조화와 협력을 통해 성장이 지속될 수 있도록 대한상의가 이음새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